여성들은 종종 Sex에 대한 거부를 전략적 옵션(Strategic option) 중의 하나로 인식하고 있나 보다. 결혼전 여성에게는, 이는 혼전 순결이 여전히 어떤 형태로든 강요되고 있는 현대에도 나름의 정당성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전략이라 하는 것이 아무래도 그다지 우호적이지는 않은 상대에 대해 자신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할 때, 남녀 관계가 정말 그러한 관계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연애 초기의 밀고 당기기가 진행되는 기간에는 당연한 과정이 될 것이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지 못하고 자신이 상대를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생기면서 Sex를 포함하는 스킨쉽은 하나의 전략적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간, 또는 여전히 사랑하는 연인들 간에도 Sex가 전략적 옵션으로 받아들여져야 할까? 물론, 남녀간 Sex에 대해 기대하는 차이도 다르고, 개개인의 욕망의 크기와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Sex에 대한 감성적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부부간/애인간 이러한 감성의 차이를 극복하는 것이 왜 서로간의 대화와 배려가 아닌 전략적 옵션으로 이루어져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의 희곡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BC 450~388 경)의 희곡에서도 섹스 거부가 반전을 위한 해법으로 다루어 졌었고, 이러한 예는 근간의 콜롬비아에서도 범죄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의 섹스 거부(Strike of crossed leg, 2006)에서도 볼 수 있다.
부부(연인간에는 다소의 논란이 있을 수도 있겠다.)간의 Sex가 감정의 교감이나 사랑이 아닌, 전략적으로 그리고 정치적 목적성을 가지고 다루어 진다는 것은 꽤나 서글픈 일이다.
▲ 리시스트라타 프로젝트를 알리는 로고. 사진출처: www.lysistrataproject.com
AP 통신 등 외신은 지난 3일 미국을 비롯한 56개국에서 그리스의 희곡 작가 아리스토파네스(Aristophanes, BC 257~180)의 반전 연극 <여자의 평화> (Lysistrata)가 일제히 낭독되었다고 보도했다.
뉴욕에 거주하고 있는 여배우 캐스린 블룸(Kathryn Blume)과 샤론 바우어(Sharron Bowe)에 의해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리시스트라타 프로젝트’라고 불리고 있다.
캐스린 블룸은 <여자의 평화>를 영화 대본으로 각색한 적이 있는 여배우이기도 하다. ‘전쟁을 반대하는 연극인 모임'( Theaters Against War)에서 연극이 시작되고 끝날 때 하는 인사말을 통해 전쟁 반대를 주장하는 성명을 발표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이 자리에서 <여자의 평화>를 읽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후 캐스린 블룸은 샤론 바우어와 함께 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전자우편을 보내어 <여자의 평화>를 낭독하자고 호소함으로써 이 프로젝트는 출범하게 되었다.
이 두 여배우의 호소에 찬동하여 지난 3일 아시아, 유럽, 중동, 남북 아메리카 전역에서 <여자의 평화>가 일제히 낭독되었다. 전쟁 반대를 호소하고자 세계 각지에서 일제히 고대 그리스의 반전 연극이 낭독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 평화를 염원하는 여성들이 '섹스 파업'을 벌인다. 출처 www.lysistrataproject.com
런던에서는 3월 3일 오전、조셉 파이언스(Joseph Fiennes), 리처드 윌슨(Richard Wilson) 등 저명한 배우들이 참가하여 그리스 희곡에 사용하는 마스크를 쓰고 영국 국회의사당 앞 광장에 모여 낭독 모임을 열었다. 이 광장에는 약 300 명이 모여 3분간 침묵을 함으로써 블레어 정권이 미국을 지지하는 데 대해 항의했다.
한편, BBC의 보도에 의하면, 덴마크의 저명한 여배우인 안네 마리 헬거(Anne-Marie Helger)는 “블레어 총리 부인, 부시 대통령 부인, 그리고 라스무센 덴마크 총리 부인 등은 자신의 남편들이 '개짓거리'를 그만둘 때까지 동침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일명 <여자의 평화>라고 불리는 ‘리시스트라타’는 펠로폰네소스 전쟁(BC 431~ 404년)이 한창일 때, 아네테의 아크로폴리스를 무대로 전개되는 일종의 반전 연극이다.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감으로써 '독수공방'을 할 수밖에 없는 여성들. 그 가운데 젊고 아리따운 아테네의 여성 리시스트라타는 여성들의 힘으로 전쟁을 중단시키고자 한다. 리시스트라타는 여성들에게, 남자들이 전쟁을 그만둘 때까지 잠자리를 거부하자고 호소했다. 말하자면 여성들이 '섹스 파업'을 일으킴으로 전쟁놀음을 막자는 것이다.
▲ 전쟁을 하지말고 사랑을 하라"(Make Love, Not War) 출처 www.lysistrataproject.com
아테네뿐만 아니라 적국인 스파르타의 여성들까지 이 호소에 동참하고, 마침내 섹스 파업에 ‘항복’한 남성들이 평화를 약속하게 된다는 것이 연극의 기본 골격이다.
코펜하겐에서 ‘리시스트라타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미국의 배우 리 레만(Rhea Leman)은 BBC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들은 평화가 없다면 섹스도 없다(No Peace, No Sex)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리 레만은 "이 연극은 한마디로 , 만약 남성들이 전쟁을 일으킨다면 여성들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어떤 섹스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상천외한 여성들의 ‘전술’로 끝내 평화를 이룩했다는 고대 그리스 반전 연극의 이야기가 과연 21세기에도 재현될까.
남성들이 호전적이며 여성들은 평화지향적이라고 말한다면, 그것 자체가 성차별적인 발언일 수 있겠지만, 아무튼 지금 전쟁론을 펼치고 있는 ‘겁쟁이 매파’(chicken hawks) 남성들에게 고대 그리스 연극의 주인공 ‘리시스트라타’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