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전쟁

Book 2009. 12. 2. 21:33


상당히 흥미있는 책입니다. (서양이 아닌) 중국인의 입장에서 썼고 다소 음모론적인 자세에서 화폐의 발생과 변화를 보고 있지요. 제가 좋아하는 방식인, 숫자를 근거로 논증을 펴거나 하지는 않지만 여러가지 제시하는 역사적인 사건들에 대해 상당히 신빙성도 있게 들립니다. 적어도 Fact 에 대해서 저자가 오도하고 있지 않는 이상, 저자의 시선이 상당히 설득력 있게 보이기도 합니다.

금/은 등의 실질적 가치를 지니는 것과 달리 종이에 돈을 찍고 이를 가치를 가지는 돈으로 사용하기로 약속하는 그 초기 과정들이 흥미진진하게 나타나있습니다. 금/은 등은 사람이 만들 수 없지만(물론 찾아다니면 발굴할 수는 있습니다만), 돈은 종이에 말그대로 "찍어내기만" 하면 되지요. 돈이 실질적 가치와 이렇게 분리되면서 인플레이션(즉, 실물 자산보다 돈이 자꾸만 많아지는 현상) 가능성이 발생하게 되며 돈을 발행하는 권리를 누가 가지느냐에 따라 (자본)권력이 주어지게 됩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롭게 와닿은 부분은 크게 세가지 입니다.

1. 화폐과 인플레이션
사실 근 20~30년간의 안정적인 경제 성장은 안정적인 인플레이션(+/-3%정도)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저는 경제가 성장(부가 창출)하는데 있어 이러한 인플레이션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만 있었는데, 저자는 이러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게된 가장 중요한 근본 원인은 바로 실물 화폐(금/은 등)와 종이 지폐의 괴리에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카고 연방 준비은행은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미국에서는 지폐든 은행 저축이든 상품과 같은 내재적 가치를 지니지 않는다. 달러는 그냥 종이일 뿐이며 은행 예금은 단지 장부에 기록하는 숫자에 불과하다. 금속 화폐는 일정한 내재적 가치가 있으나 통상 액면 가치보다 늦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수표, 지폐, 금속 화폐로 채무를 상환하거나 다른 용도로 쓰는 과정에서 액면 가치를 인정받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의 믿음이다. 사람들은 원하기만 하면 이러한 화폐로 다른 금융 자산이나 실제 상품 및 서비스로 바꿀 수 있다.

2. 신용 창출: 미래 현금흐름을 현재로 끌어와서 사용하는 것
담보든 신용이든, 많은 사람들이 – 또한 국가도 - 대출을 받고 미래에 그 금액을 갚겠다 약속하고는 현재 돈을 사용(소비/투자)합니다. 과거에는 그 형태가 일반 대출에만 한정되어 있었지만, 이제는 향후 현금흐름이 있는 것이면 무엇이든 현금화해서 팔아버립니다. 국민의 세금을 담보로한 국채, 신용카드 사용 금액을 담보로 한 채권, 자동차 할부금을 유동화한 채권, 향후 오르게 될 주식 가치를 담보로한 채권 등, 가지고 있는 어떤 자산이든 적당히 포장해서 신용 등급을 매길 수 있다면 현금화가 가능해지고 있습니다.

월가에는 미래의 캐시플로가 있다면 이를 증권으로 만들 것이라는 유명한 말이 있다. 사실 금융 혁신의 본질은 미래의 자산을 미리 쓸 수 만 있다면 모두 현금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러한 신용 등급이 정확히 결정되기 어려운 단점이 있다는 것이지요. 저자가 밝히듯, 근간의 위험을 안겨다준 Sub-prime mortgage의 상당 부분은 안정적이지 않은 대출이 마구잡이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라지요.

3. 신용창출과 회수 사이클
사실 앞의 두번째 항목에서 기회와 위기가 동시에 발생하는데, 자산을 유동화하는 과정에서 신용이 창출되고 여기서 창출된 자본을 바탕으로 경제가 성장하게 됩니다. 성장의 기회가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신용을 과도하게 제공하면 실질 경제가 성장하는 수준을 넘어서 거품이 발생하고, 어느 순간 이러한 거품은 최후를 맞이하게 되지요. 거품이 꺼지면 정상 수준까지만 하락하면 좋으련만, overshooting 이 있으면 undershooting이 있는 법이어서, 시장의 하락 분위기는 패닉을 초래하고 과도한 공포는 자산의 가치를 급격히 떨어뜨리는 단계로 이어지게 됩니다. IMF 때 아시아권의 버블과 그 붕괴, 그로 인한 급격한 자산(주식, 기업가치, 부동산 등) 가격의 하락, 이번 미국발 금융 위기 등이 경제 성장을 넘어서는 과도한 신용 창출과 그 거품의 붕괴로 인한 사태의 예이지요.

전제적인 스토리는, 로스차일드가에서 기원한 (민간) 은행가들이 금리를 결정하면서 신용 창출과 회수를 조정하고, 이에 따라 거품을 조성하기도, 또 적당한 시점에 터뜨리기도 한다는 내용입니다. 방대한 정보와 세세한 디테일에 이르기 까지 상당히 재미있게 본 책입니다. 후반부로 가면서, 중국은 이러한 은행가의 세력에 당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해야한다.. 라는 이야기가 조금 지루하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상당히 괜찮았던듯 합니다.

전반적인 음모론에 크게 공감이 가지도, 그럴 필요도 없지만, 서양식 사고에만 익숙해 있던 뇌에 신선한 시각을 열어준 계기도 되었고, 지금까지의 화폐/금본위제 등의 변화와 맞물려 화폐 및 신용이 어떻게 발생하고 변화되었나 큰 그림을 보게된 책이었습니다. 누가 위기를 만들고 통제하느냐는 그다지 중요하진 않지만, 어쨌건 사람사는 (경제)사회에
발생하는 일이니까요. (거시) 경제에 관심있는 분들께 강추!